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아버지는 참봉 김덕무(金德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윤인(尹麟)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581년 예문관 검열, 1582년 성균관 전적·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 1583년 예조·호조·병조 좌랑을 역임하였다. 1585년 사간원헌납으로 재임 중에 이이(李珥)를 비난하는 정여립(鄭汝立)을 논박하다가 파직당하였다.
1590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었으나 그 이듬 해 정철(鄭澈) 등이 축출당할 때 다시 파면당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문학·교리·지평·사간 등을 역임하고, 난이 끝난 뒤 사인(舍人)·수찬(修撰)·직강(直講)·연안부사·사복시첨정 등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전주로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청풍군(淸風君)에 봉해졌다. 1615년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정치가 문란하므로 사직하였다.
1618년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강계로 유배되었다가 무안으로 이배되어 5년 뒤 그 곳에서 죽었다.
인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청풍의 봉강서원(鳳岡書院)과 무안의 송림서원(松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