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

김광수 글씨
김광수 글씨
회화
인물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고동 서화 수집에 대한 가치를 일깨운 수장가.
이칭
이칭
상고당(尙古堂), 성중(成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99년(숙종 25)
사망 연도
1770년(영조 46)
본관
상주(尙州)
주요 관직
진사|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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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고동 서화 수집에 대한 가치를 일깨운 수장가.
개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성중(成仲), 호는 상고당(尙古堂). 감식가이자 소장가로, 18세기 문인 사회에서 골동 서화 수집의 가치를 깨닫고 취미로 정착하는 데 공헌하였다.

생애

1699년 음력 12월 18일 이조판서 김동필(金東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대대로 당상관 이상의 인물을 배출한 문벌가 출신이자 모친 풍산 홍씨(豊山洪氏) 집안 역시 대표적인 명문가였다. 그러나 김광수 자신은 벼슬을 마다하고 1729년 진사, 군수를 지낸 것이 이력의 전부였으며, 평생 책과 서화에 심취하여 살았다. 전하는 문집은 없고 생전에 지은 묘지명인 「유명조선상고자김광수지광(有明朝鮮尙古子金光遂之壙)」이 남아 있다. 박지원(朴趾源), 이광사(李匡師), 이덕수(李德壽), 신유한(申維翰) 등 문인 서화가들과 교유하였고, 의관 김광국(金光國)에게 어려서부터 서화 수집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 그가 조선 후기 대표적 수장가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부인 완산 이씨(完山李氏)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고 묘소는 경기도 파주 장단 선산에 있다.

활동사항

신유한, 이덕수 등의 글에 의하면, 김광수는 문벌을 유지해 온 가세(家勢)를 바탕으로 부유한 신분을 누렸으나, 세상의 험난함과 관직의 화려함이 싫다며 벼슬을 버리고 예술에 심취하여 살았다. 명나라 문인 화정(華珵, 호 尙古)을 흠모하여 자신의 호를 상고당으로 지었고, 골동품 수집을 통해 동시대 문인들에게 고동 서화 취미를 전파하였다. 집안에 진귀한 고서화와 서책을 쌓아 놓고 감상하였다고 하며, 마음에 맞는 물건이 있을 때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고 구했다고 한다. 북송의 도시 풍경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소장하여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에게 북학(北學) 의지를 고양시켰고, 1744년에는 와룡암(臥龍庵)에 김광국, 심사정을 초대하여 모임을 갖기도 하였다. 후에 소장하던 그림 일부를 김광국에게 승계하였다. 심사정과 친분이 각별하여 1758년 「방심석전산수도(仿沈石田山水圖)」, 1759년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에 각각 발문을 썼다. 전문적인 감식안을 인정받아 박지원은 “감상지학(鑑賞之學)의 개창자”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화조도」, 「초충도」 등 그림을 남겼고, 금석탁본을 모은 『상고서첩(尙古書帖)』이 전한다.

상훈과 추모

김광수 사후(死後) 수집벽과 고고한 삶을 추모한 글이 박지원, 신유한, 이덕수 등의 문집에 전해 온다.

참고문헌

『상산김씨대동보(尙山金氏大同譜)』(상산김씨대동보편찬위원회, 2004)
「상고당 김광수의 고동 서화 취미와 계승에 대하여」(오상욱, 『민족문화』 46, 2015)
「18세기 조선 문인들의 회화 수집 활동과 화단」(박효은,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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