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의 오른쪽 ⅓ 정도가 불에 타 그슬린 상태이지만 다행히 용안이 완전하고 원본이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사모(紗帽)에 녹포단령(綠袍團領)을 착용하고 정장관복차림에 공수(拱手) 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사모의 높이가 상당히 높고 양옆으로 각(角)이 길게 뻗힌 점, 녹포의 형태 또한 양 어깨 부분이 협소하고 긴 소매가 밑으로 늘어진 형태에서 숙종 말년 초상화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자에는 호피를 깔고 있고 족좌대에는 화문석이 깔려 있으며, 별도의 배경은 없다. 안색은 엷은 갈색인데, 윤곽선의 농담을 조절하여 자연스러움을 살렸으며, 돌출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분은 선염의 농도를 조절하여 입체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체적으로 수법이 정교하게 조화되지 못하여 마치 소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18세기 초 정장 관복 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이 되며, 당대인들에게 가품(佳品)이라고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한국전쟁 당시 어진을 보관한 부산 창고가 소실되면서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어진이 극소수만 남아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비록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조선시대의 어진을 연구하는 데 참고자료의 가치가 있다.
「연잉군 초상」은 1975년 보물로 지정된 「강현 초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 형식의 초상화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되며, 또한 숙종 연간의 대표적인 어용화가였던 진재해의 작품 연구에 있어서도 기준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