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화원』은 김광국(1727∼1797)이 우리나라 및 중국·일본의 그림을 모아 만든 화첩이다. 조선 후기 수집가인 김광국이 평생 모은 그림을 모은 대규모 화첩이다. 현재 『석농화원』은 모두 낙질되었지만 본래 약 9권으로 방대하게 만들어졌다. 고려·조선, 중국, 일본, 러시아, 네덜란드 등 외국 그림도 10점 가까이 포함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그림을, 왼쪽에는 화평을 실어 그림과 글씨가 마주 보게 구성하였다. 『석농화원』은 유명·무명 화가들의 그림과 비평을 집대성하였다. 화가의 정보도 풍부하여 한국 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후기 의관이자 수집가인 김광국이 일생 동안 모은 그림을 정리하여 만든 대규모 화첩으로, 지금은 모두 파첩(破帖)되어 전해진다. 고려~조선에 이르는 우리나라 역대 그림과 서양과 중국, 일본의 그림 등이 수록되어 18세기 회화 · 비평의 경향 및 외국 그림의 국내 유입 정황을 알려 준다.
현재 『석농화원』은 모두 낙질되어 원형을 알 수 없지만 본래 약 9권(원첩 4권, 기타 5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첩으로 만들어졌다. 모태가 된 원첩(原帖) 외에 여기서 파생된 습유(拾遺), 보유(補遺), 별집(別集), 속(續) 등이 추가로 만들어졌는데, 이 중 ‘별집’이 현존하는 『화원별집(畵苑別集)』이다. 따라서 『석농화원』이라 함은 좁은 의미로는 4권으로 구성된 원첩을 일컫지만, 범위를 넓히면 김광국이 만든 화첩 전부를 통칭하는 의미가 된다.
김광국은 10대 후반부터 모은 그림을 50세가 넘어 화첩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1784년(58세)에 원첩 4권을 만들고 1796년(70세)에 마지막으로 부록을 만들었다. 결국 『석농화원』은 김광국이 71세로 죽기 전까지 평생 수집한 그림으로 구성된 화첩인 것이다.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화첩의 서문을,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 발문을 썼다. 고려와 조선, 중국 등의 총 100여 명에 달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포함되었으며, 김명국(金明國) · 윤두서(尹斗緖, 16681715) · 김홍도(金弘道, 1745~?) · 강세황(姜世晃, 17131791) 등 조선시대 대표 작가들이 망라되었다. 그림의 소재 역시 산수, 인물, 고사(故事), 사군자 등 다양하며 김광국을 비롯한 김광수(金光遂, 16991770), 강세황 등의 화평(畵評)을 함께 수록하였다. 화평은 주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이 주를 이룬다. 오른쪽에는 그림을, 왼쪽에는 화평을 실어 그림과 글씨가 마주보게 구성하였고 화가와 원글자, 서자(書者)의 이름을 적은 제첨(題籤)을 붙였다. 김광국의 화평은 유한지(兪漢芝), 이한진(李漢鎭) 등 당대 유명 서예가들이 써 주었고 장남 김종건(金宗建)이 쓴 것도 다수 있다.
최근 화첩과 같은 제목으로 『석농화원』을 비롯, 『화원속집(畵苑續集)』과 『화원습유(畵苑拾遺)』 등의 내용이 모두 기록된 18세기 육필본 원고가 발굴되어 『석농화원』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려~조선 및 중국 작품 외에 러시아, 네덜란드, 일본 우키요에[浮世畵]에 이르는 외국 그림도 10점 가까이 포함되어 국제적인 성격이 엿보인다.
김광국의 친구 안호(安祜)에 의하면, 『석농화원』은 본래 4~5첩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는데, 육필본 『석농화원』에서도 『석농화원 원첩』이 총 4권에 총 97점의 그림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석농화원 습유』와 『석농화원 보유』, 『석농화원 부록』 수록 작품을 포함하면 총 260점이 넘는다. 김광국이 만든 여러 종류의 『석농화원』은 사후(死後) 모두 흩어졌고 지금은 120여 점 정도가 실물로 알려져 있다.
고려~조선 후기 유명, 무명 화가들의 그림과 당대 비평을 집대성하였고, 화가의 일생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풍부하여 한국 회화사의 공백을 채워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