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초명은 한경(漢炅). 자는 만청(曼倩) 또는 여성(汝成), 호는 저암(著菴) 또는 창애(蒼厓). 1768년(영조 44) 진사시에 합격한 뒤 김포군수 등을 역임하고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남유용(南有容)의 제자로 송시열(宋時烈)을 추모하여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혔으며 저서로 『저암집』이 전해온다.
그림에 대한 재능도 거론되지만 그것을 입증할 유작은 알려진 것이 없으며, 화우(畫友)들이 많았던 듯,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서 제발문(題跋文)을 심심하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