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 초명은 영시(永詩). 자는 일소(逸少), 호는 일호(一濠).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의 5대손이며, 부사 남진화(南進和)의 아들이다.
서울의 남촌(南村)에서 살았으며 벼슬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을 지냈다.
나비를 특히 잘 그려 남나비[南蝶]라고 불리었으며, 평생 동안을 나비와 꽃그림만을 즐겨 그려 많은 유작을 남겼다. 그의 나비 그림들은 곱고 화려한 채색과 정교한 공필(工筆)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정확한 세필의 사실적 묘사에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군접도(群蝶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폭에는 여러 종류의 나비 약 150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나비 그림은 모란·나리·패랭이·국화 등 꽃그림과 조화되어 있으며 고양이 등도 그려넣었는데, 동물화에도 기량있는 세필의 사실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나비 그림의 제일인자로 조선 말기의 사실적이면서 장식성이 강한 화풍의 진작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유작으로는 「화접도대련(花蝶圖對聯)」(국립중앙박물관 소장)·「화접묘도(花蝶猫圖)」(손세기 소장)·「석화접도대련(石花蝶圖對聯)」(간송미술관 소장) 등 많은 그림이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