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재(彛齋). 아버지는 김희겸(金喜謙)이다. 관직은 찰방을 지냈다.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으나 중간(重刊) 『충렬록(忠烈錄)』에는 김응하(金應河)의 「우적파진도(遇賊擺陣圖)」·「의수사적도(倚樹射賊圖)」·「사후악검도(死後握劒圖)」·「양수투항도(兩帥投降圖)」 등을 그렸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화원(畫員)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산수도」에 강세황(姜世晃)이 적은 화제(畵題)로 미루어 보아, 그가 활동하였던 시기는 18세기 영조 및 정조연간으로 짐작된다. 그림으로는 산수화·인물화·화조화(花鳥畫)·영모화(翎毛畫) 등이 전해오고 있으며, 「산수도」와 「야압도(野鴨圖)」가 잘 알려져 있다.
두 작품은 화재(畵材)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수묵을 능숙하게 사용하였고 풍부한 색감을 지녔다. “무르익은 솜씨 속에 생생한 사의(寫意)를 담고 있다(熟中有生意).”라는 강세황의 화찬문(畫贊文)이 적힌 소품의 「산수도」는 파격(破格)의 구도와 엷고 진한 먹선을 반복한 바위의 괴량감(塊量感) 표현에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석문(石門)을 형성한 바위와 두 마리의 오리를 그린 「야압도」에서도 공간구성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가을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색감이 참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