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의관이자 서화 수집가인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이 만든 화첩으로, 대표적 화첩인 『석농화원(石農畵苑)』의 별집(別集)이다. 이 첩 속에 김광국이 그렸다는 「방두기룡강남춘의도(倣杜冀龍江南春意圖)」가 한 점 포함되어 있다.
첩의 내지에는 의명(宜明) 유한지(兪漢芝)가 예서체로 쓴 첩명(帖名)이 있다. 이어 총 79점에 달하는 작품 목록이 3면에 걸쳐 기재되어 있고,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화기(畵記)」 일부를 채록한 화평(畵評)과 홍득구(洪得龜, 1653~?)의 화론(畵論)이 첨부되어 있다. 홍득구의 화론은 김광국의 장남 김종건(金宗建)이 대필한 것이다.
화론 다음에는 역대 그림을 시기별로 수록해 놓았다. 선조(宣祖)의 「묵죽화」를 맨 앞에 두었고 뒤이어 중국 명대(明代) 동기창(董其昌)의 그림과 고려 공민왕의 「엽기도(獵騎圖)」, 조선 초기~후기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배열하였다. 뒤이어 장도악(張道渥), 장문도(張問陶) 등 청대 화가들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수록하였는데, 이들은 조선 후기 연행사를 통해 국내에 이름과 작품이 알려진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잔편(殘片)이 아닌 완성된 구도를 갖추었고, 산수·인물·화조·초충 등 소재 역시 다양하다. 일부 인장은 후낙(後落)이거나 화풍 역시 재검토의 여지가 있지만 시대 전체를 통괄하여 작품을 체계적으로 선별·수집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성첩(成帖) 시기에 대해서는 수록된 작가 중 생몰년이 가장 늦은 인물이 김조순(金祖淳, 1765∼1831)이고 김광국의 졸년이 1797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의 말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 5책, 80면으로 구성되었다. 작품 크기는 다양하지만 최대 가로 세로 폭은 30㎝ 내외이다. 56명의 중국 및 조선 서화가의 작품 총 79점을 수록하였는데, 이 중 묵서(墨書)가 5점, 수묵 담채화가 74점으로, 회화 작품이 월등히 많다. 작가별로는 이정(李霆, 1554~1626), 김명국(金明國), 홍득구, 윤양근(尹養根)의 그림이 각 3~4점으로 다른 작가에 비해 비교적 많이 수록되어 있다.
목록과 작품이 모두 갖추어진 화첩으로, 우리나라 역대 화가들에 대한 품평과 그 화풍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작품의 국적과 시대를 일정하게 분류하여 배치하였고 명대 그림은 첩의 앞머리에, 청대 그림은 ‘만주’로 분류하여 첩의 마지막에 수록하였다. 다만 조선 후기 대표 화가인 김홍도(金弘道, 1745~?)나 신윤복(申潤福, 1758~?),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그림, 정선(鄭敾, 1676~1759)의 실경 산수가 빠졌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화원별집』은 일제 시기부터 이 첩에 수록된 그림이 해당 화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이는 김광국의 안목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시기별 작품이 망라되어 있어 조선시대 회화사의 흐름을 개관해 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의의가 있다. 또한 이 화첩을 통해 윤정립(尹貞立, 1571~1627), 이사호(李士浩), 정세광(鄭世光), 김이승(金履承) 등의 존재가 한국 회화사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