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박유명은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고,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그 뒤 당상선전관(堂上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했다. 이 초상화는 박유명이 공신으로 책훈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한편, 수원시에서 이 초상화를 이모(移摹)하여 2007년 박유명 종손에게 기증한 바 있다.
전신교의좌상의 이 초상에서 박유명은 낮은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공수(拱手)자세에 다리는 족좌대 위에 심한 팔자형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바닥에는 화려한 채전이 깔려 있다. 어깨선은 부정형의 심하게 둥근 형태로 처리되어 부자연스런 느낌이 들며, 의복 역시 선묘 위주의 어둡고 탁한 색조를 보인다. 얼굴은 옅은 갈색으로 윤곽선을 그었고 눈과 입의 형상 역시 갈색 윤곽선으로 처리되어 평면적인 느낌이 강하다. 안면의 전반에 걸쳐 농담을 달리하여 갈색의 선염을 가하였다. 의자 뒤로 뻗친 단령(團領)이 삼각형태의 뾰족하게 뒤로 뻗친 모양, 단령의 트임 사이로 보이는 고(袴)와 첩리, 내공(內工)이 가지런히 배열된 형태는 17세기 초반 공신도상의 상용형식으로 나타나는 특색이다.
이 초상은 17세기 초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또한 호랑이 흉배의 무관 초상화로서 주목된다. 이 초상과 함께 후대의 이모본(移摹本; 원본을 옮겨 그린 그림)이 있는데, 원본과 양식적으로 상이하며 원작의 수준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