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윤급은 조선 후기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해평, 호는 근암(近菴)이며,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尹斗壽)의 5세손이다. 1725년(영조 1) 문과에 급제한 후 형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여 자주 파직되었으나 의로운 주장이었기 때문에 곧 서용되곤 했다. 특히 글씨에 뛰어나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였다.
이 초상은 쌍학흉배(雙鶴胸背)와 서대(犀帶)를 하고 있는데, 이로 보아 윤급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내 1품에 오른 1762년(영조 38) 66세 무렵에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오세창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변상벽(卞相璧)이 윤급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화재화탱(和齋畵幀)”의 기록이 인용되고 있어, 이 초상이 당대 최고의 어진화사(御眞畵師)였던 변상벽이 그린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모(紗帽)와 흑단령(黑團領)을 착용하고 표피를 깐 교의자(交椅子)에 좌7·9분면으로 앉은 뒤 공수(拱手)하고 있는 전신교의좌상상이다. 얼굴의 사마귀와 검버섯, 붉은 기운까지 정교하게 묘사된 수작이다.
초상 자체의 표현도 뛰어나지만, 족자 표장도 18세기 후반의 원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어 이 작품의 중요성을 더해준다.
초상화를 잘 그려 국수(國手)라고 불렸던 18세기 화가 변상벽의 작품으로, 인물의 연륜과 풍모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이 시기 초상화 연구에 기준작이 되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