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성 초상 및 관련 자료 일괄 ( )

이덕성 초상 및 관련 자료 일괄 중 이덕성 초상
이덕성 초상 및 관련 자료 일괄 중 이덕성 초상
회화
유물
문화재
조선 중기 문신 이덕성(李德成, 1655-1704)의 초상화 및 그와 관련된 자료.
정의
조선 중기 문신 이덕성(李德成, 1655-1704)의 초상화 및 그와 관련된 자료.
개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덕성(李德成)은 조선 숙종대의 문신으로 정종의 아들 덕천군(德泉君)의 8대손이다. 본관은 전주, 호는 반곡(盤谷)이다. 1682년(숙종 8)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한 후 동래부사, 해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충청감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내용

화면 왼쪽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이덕성(자는 득보) 어른의 초상(완산 이씨)으로 호는 반곡이다. 을미년(1655)에 태어나 갑신년(1704)에 돌아가셨다. 42세 때 초상이다[忠淸觀察使公 諱德成 字得甫 畵像 完山人 號盤谷 乙未生 甲申卒 四十二歲時眞].”라고 적혀 있다. 이덕성이 42세(1697)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고, 50세(1704)에 이르러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었으므로, 그림의 제발은 사후에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사후에 이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높은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좌안칠분면의 자세로 교의에 앉은 모습이며 배경은 없다. 얼굴은 가는 선묘를 사용했으며 홍조를 표현하고 명암을 살짝 가했다. 육리문은 없으며 수염이 길고 구불거리게 묘사되었다. 단령은 비교적 가늘고 짙지 않은 먹선으로 윤곽과 의습선을 표현하였고 명암을 조금씩 가했다. 쌍학흉배는 밝은 녹색을 바탕으로 단정학과 오색구름을 세필로 화려하게 표현되었고, 삽금대도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짙은 먹으로 묘사된 교의를 덮고 있는 표범 가죽은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으로 사실적으로 그렸다.

한편, 이덕성 관련 자료는 교서 3점, 유서 3점, 교지·교첩 114점, 시권 1점 등 4종 121점으로 백패와 홍패를 비롯하여 관직을 제수 받았을 때의 관련 교지 등이고, 전적 5건이 있다.

특징

「이덕성 초상」은 17세기의 정형화된 공신도상에서 탈피하여 좀 더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변모하던 18세기 초엽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 화면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얼굴과 의복의 표현에서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한 점이 역력히 눈에 띈다.

이 초상화는 정형화된 공신도상에서 보다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변모하던 18세기 초엽의 정교한 작품으로 중요한 사례이다. 관련 자료도 모두 흩어짐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덕성의 초상화 및 전기에 관한 관련 고문서들이 잘 보전되었다는 점에서 인물 연구에 있어 귀중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이덕성의 이력사항 및 전기자료는 사료적인 가치가 있으며, 아울러 인사·행정에 관한 연구자료가 된다. 또한 그의 몇몇 필적도 서예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한국초상화연구』(조선미, 열화당, 1983)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황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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