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중백(重伯), 호는 지남(砥南),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된 김단(金鍴)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극해(權克諧)의 딸이다. 외조인 권사고(權槎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77년(숙종 3) 향천(鄕薦)으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사포서별검(司圃署別檢) 등을 거쳤으며 1691년 수상(首相) 권대운(權大運)과 이조판서(吏判) 유명현(柳命賢)의 추천으로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에 임명된 후 홍산현감(鴻山縣監), 괴산군수(槐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홍산현감으로 있을 때 흉년을 만나자 자기의 봉급을 털어 6백여 석의 곡물(穀物)로 굶주린 사람들을 구했으며, 많은 토지를 농경정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자 도신(道臣: 관찰사)이 그의 공로를 칭친하였다.
괴산군수로 있을 때에도 오로지 군민(郡民)만을 위한 정책을 펴자 고을 사람들이 그를 존모(尊慕)하여 송덕비(頌德碑)를 세웠으나 곧 묻도록 명하였다. 그가 괴산 군제(郡齋)에서 세상을 마치니 그의 청백(淸白)한 마음을 아는 친구들이 옷 한 벌씩을 보내 장사 지내도록 하였다. 저서로는 『지남일고(砥南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