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와실기 ()

면와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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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학자, 황경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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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황경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872년(고종 9) 황경림의 후손 황이익(黃履翊)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조성교(趙性敎)의 서문이, 권말에 홍택주(洪宅疇)·유치엄(柳致儼) 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목판본.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4수, 잡저 5편, 권2에 부록으로 저자의 유사·행장·묘지명·묘갈명·동호사봉안문(東湖祠奉安文)·상향축문(常享祝文)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공산회맹일차서화익재겸운(公山會盟日次徐和益再謙韻)」은 서재겸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만 번 죽어도 항전할 것을 굳게 맹세하면서, 취의성인(取義成仁)하는 것이 대장부의 사업이라 하여 높은 충절을 보여주고 있다.

잡저 가운데 「임진창의일록(壬辰倡義日錄)」은 1592년을 전후해 기록한 것이다. 1592년 4월 13일에 왜적이 부산포로 대거 침입해 동래·울산·양산·경주·청도·밀양 등이 잇따라 함락당하자 표금거(表金鐻)·신해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 영천에서 적병을 대파한 일, 그 뒤 신녕(新寧)의 권응수, 경산의 최대기(崔大期), 대구의 최동보(崔東輔)·영천의 정대임(鄭大任), 현풍의 곽재우 등이 각지에서 일어나 왜적을 연일 격파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1593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평양에서 왜군을 대파하는 등 많은 전적을 올린 일, 진주성(晉州城)에서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최경회(崔慶會) 등 군관민 6만∼7만인이 8일 동안 항전하다 전사한 내용 등을 상세히 기록해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화왕동고록(火旺同苦錄)」은 1597년에 방어사(防禦使)에 임명된 곽재우가 진영을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옮기고 왜적과 몰래 통한 배반자 공호겸(孔好謙)을 죽이고, 600여 명의 의병들이 성중에 모여 진충보국할 것을 맹세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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