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태수(台叟), 호는 서계(西溪). 경상도 성주 출신. 아버지는 참봉 김관석(金關石)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로 박탄(朴坦)의 딸이다.
어려서는 조식을 사사하였고, 오건(吳健)에게서 『심경』·『근사록』을 배웠으며, 황준량(黃俊良)에게서 『중용』과 『대학』을 강의받았는데, 모두 지극한 칭찬을 받았다.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와 도의로 사귀었고, 벗을 사귐에서는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행을 즐겼으며, 모든 행실이 겸손하였다.
특히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있었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건강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두문불출, 경전 공부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항상 가내 법규를 엄중히 하여 친척 간에 친애함과 불의를 행하지 말 것을 강조하여 우애가 돈독하였다.
1591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참봉(繕工監參奉)을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야산으로 피란하였다.
주로 도학을 닦고 후학의 진흥에 힘썼다. 성주의 청천서원(晴川書院)과 상주의 낙암서원(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서계일고(西溪逸稿)』 3권 1책이 규장각도서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