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얼출신으로 전라감사이던 이창후(李昌厚)의 반인(伴人: 수종인)이었는데, 광해군 때의 창덕궁 영조(營造)에 세금 수집관으로 발탁되어 관계에 진출하였다.
처음에는 별장의 직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공사에 필요한 자재 수집에 탁월한 재능을 보임으로써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1621년(광해군 13)에는 조도관(調度官: 민간에서 물자를 강제 징발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직)에 임명되고 곧 이어 가선대부에 올랐다.
당시 창덕궁 영조조도관(營造調度官)에 천얼출신이 많이 임명되었지만, 당상관에까지 오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조도사라는 직명이 특별히 부여되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관할 지역인 황해도에서는 김순의 가렴주구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였다. 인조반정 후 황해도에서 효시되었는데,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나아가 육신을 도륙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