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왕자의 난 뒤 대호군으로서 한규(韓珪)와 함께 이방간(李芳幹) 부자를 토산(兎山)에까지 호송하였으며, 1408년에는 풍해도병마도절제사로서, 또 경기좌우도조전첨제절사(京畿左右道助戰僉制節使)로서 왜구방어에 차출되어 공을 세웠다.
왜구방어와 여진정벌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1410년 조연(趙涓)의 지휘하에 신유정(辛有定)·곽승우(郭承祐) 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여진족 지휘관 8명을 비롯, 부족 수백 명을 토벌한 것은 대표적인 군공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호용시위사총제(虎勇侍衛司摠制)를 거쳐서 충청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1413년 죽으니 왕이 부의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