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덕경(德卿), 호는 병암(炳菴). 아버지는 김상억(金相億),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홍찬(洪瓚)의 딸이다. 학문이 거의 성숙한 뒤에 전우(田愚)의 문인이 되었다.
가세가 극도로 곤궁하여 주경야독을 하였으나 워낙 독실하게 공부하여 임헌회(任憲晦)·신응조(申應朝)·송병선(宋秉璿)·박운창(朴芸牕)·김계운(金溪雲) 등 당시 학자들에게 모두 허통(許通) 받았으며 성리학을 더욱 공부하기 위하여 한 살 연상인 전우에게 3번씩이나 찾아가 사제(師弟)관계를 맺었다.
이기설(理氣說)과 예학(禮學)에 특히 주력하였으며 이항노(李恒老)를 중심한 벽문학자(檗門學者)들의 주리설(主理說)과 인물성이설(人物性異說)을 주장하는 한원진(韓元震)계의 학설을 비판, 논변하는 반면,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과 간재(艮齋)의 학설을 적극 지지하는 학문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정부의 개화정책(開化政策)과 천주교에 대하여 적극 반대하는 시국관을 갖는 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