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은 없고, 권말에 최익현(崔益鉉)의 발문이 있으며, 문집은 총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1895년(고종 32) 손자 민대호(閔大鎬), 종손 민응호(閔膺鎬) 등의 부탁으로 기우만(奇宇萬)이 편찬해서 6권 3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당시 최익현이 지은 행장(行狀)과 발문이 있었고, 저자의 연보까지 완성되었지만 문집에 실리지는 못했다.
중간본은 1933년 최기현(崔璣炫)이 연보, 행장, 묘지명, 묘갈명 등의 부록과 최익현의 발문을 덧붙여 화순의 임대정(臨對亭)에서 8권 2책으로 간행했다.
삼간본은 1959년 증손 민영세(閔泳世)가 다른 문인들에게 흩어져 있던 원고까지 수습해서 기우만의 묘지명 대신 민병승(閔丙承)이 1932년에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추가한 후 임대정에서 간행했다.
권1·2에 사부(辭賦) 1편, 시 234수, 권3에 소(疏) 7편, 권4에 서(書) 50편, 권5에 잡저(雜著) 13편, 권6에 서(序) 2편, 기(記) 11편, 제발(題跋) 3편, 명(銘) 2편, 혼서(婚書) 1편, 축문(祝文) · 제문(祭文) 각 4편, 묘표(墓表) 1편, 행장 2편, 유사 · 묘지(墓誌) 각 3편, 별책 부록에 연보 · 행장 · 묘갈명 · 묘지명 · 유사가 수록되어 있다.
사부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지은 「화도연명귀거래사(和陶淵明歸去來辭)」이다. 시는 저작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계절을 소재로 한 시, 산수(山水)를 좋아해 선암사 · 송광사 · 계룡산 갑사 · 지리산 쌍계사 등을 유람하며 읊은 기행시, 매화[梅] · 대[竹] · 국화[菊] 등을 소재로 한 영물시(詠物詩), 홍직필(洪直弼) · 기정진(奇正鎭) 등 스승에게 올린 증여시, 이수광(李睟光) · 이색(李穡) · 권필(權韠) · 김인후(金麟厚) 등 문인 · 학자들의 시에 대한 화운시(和韻詩), 만시(輓詩) 등이 있다.
소 가운데 「면성학정방례소(勉聖學正邦禮疏)」는 학문을 권장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도모하고 인륜 도덕을 준수하자는 내용이다. 「청양병위이비완급소(請養兵威以備緩急疏)」는 국가가 무사할 때 미리 군병을 조련했다가 비상시에 대비하자는 상소문이다. 이 밖에도 과거(科擧)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한 「진과폐소(陣科弊疏)」와 문란해진 삼정(三政)을 바로잡아 백성의 부담을 경감하게 하자는 「삼정대책(三政對策)」 등이 있다.
서 50편은 홍직필, 기정진(奇正鎭), 장헌주(張憲周), 김흥근(金興根), 안수록(安壽祿), 박태휴(朴泰休), 이학재(李學在), 이경재(李經在), 유신환(兪莘煥), 전우(田愚) 등과 주고받은 것이다. 스승인 홍직필에게 쓴 6편의 편지는 중화(中和)와 이기(理氣) 등 학문관 관련해 질의하는 내용이다. 기정진에게 쓴 6편의 편지 가운데에는 '과헌기(果軒記)’를 부탁하거나 병인양요 때 소모(召募)를 권하는 내용 등이 있다. 그밖에 장헌주에게 「사애기(沙厓記)」를 지어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편지를 비롯해 만년에 학문으로 교유한 임헌회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있다. 저자의 교유 범위와 학문 수준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잡저의 「책제(策題)」에서는 정법(政法)의 근본적 개혁을 경장(更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정책의 변화를 역사적 고찰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몽양편(蒙養篇)」은 후세 교육을 위해 만든 오륜(五倫) 해설서이다. 경서와 심성에 대한 내용으로 「대학도설(大學圖說)」과 「심전설(心田說)」이 있다. 「학자오요(學者五要)」는 학자들이 꼭 갖춰야 할 덕목 다섯 가지 ‘불기기심(不欺其心)’, ‘명변의리(明辨義利)’, ‘주어례(主於禮)’, ‘무이유언(無易由言)’, ‘통거잡념(痛祛雜念)’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방원도(倣原道)」는 한유(韓愈)의 「원도(原道)」를 모방해 당시 널리 퍼진 천주교를 배척하자는 내용이다. 그밖에 「단사설(丹史說)」 · 「직중쇄언(直中瑣言)」 · 「독강목당중종기(讀綱目唐中宗記)」 등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수해(睡解)」는 잠을 소재로 한 수필이다.
기는 지인들의 거처나 정자 등에 대한 것이 대부분인데, 「태허사기(太虛舍記)」 · 「연와기(然窩記)」 · 「봉강서원이건기(鳳岡書院移建記)」 · 「문천재기(文泉齋記)」 · 「지헌기(芝軒記)」 · 「임대정기(臨對亭記)」 · 「효자손공정려기(孝子孫公旌閭記)」 · 「유쌍회정기(遊雙檜亭記)」 · 「즉이당기(則以堂記)」 등은 화순 지방의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제발 중 「전의현충효전(全義縣忠孝傳)」은 유신환(兪莘煥)이 전의현감(全義縣監) 때 전의현의 충효자로 이름난 사람들에 대해 편집한 글에 붙인 것이다. 제문에는 스승 홍직필 등에 대해 쓴 것 등이 있다. 묘지에는 부인 제주양씨(濟州梁氏)와 아들 민부(閔埠), 장조카 민치용(閔致用) 등에 대한 것이 있다.
부록에는 저자가 출생한 1808년(순조 1)부터 문집을 중간한 1933년까지의 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최익현이 지은 행장, 송병선(宋秉璿)이 지은 묘갈명, 기우만이 지은 묘지명, 종손 민응호(閔膺鎬)가 지은 유사가 실려 있다. 권말에는 1895년에 최익현이 지은 발문이 있다.
조선 말기의 정치적 · 사회적 사정을 살피고, 학자 겸 문신의 정치 참여 의식을 이해하고 전라도 화순 지역의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