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6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석강집(石矼集), 석강선생문집(石矼先生文集)
문헌/고서
편찬 시기
미상
간행 시기
1936년
저자
김석(金㙽)
편자
김구진(金龜鎭), 권정섭(權廷燮)
권책수
7권 3책
권수제
석강문집(石矼文集)
판본
석인본(石印本)
표제
석강집(石矼集)
소장처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석강문집』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중반까지 생존한 학자 석강 김석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당대 지식인의 망국의 한과 함께 안동 지역에서 이름난 학자 김휘약(金輝鑰)과 김휘준(金輝濬)의 학문적 성향을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6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저자 김석(金㙽, 1850~1925)의 자는 군석(君奭), 호는 석강(石矼), 본관은 선성(宣城)이다. 부친은 김휘려(金輝礪)이고, 모친은 이증순(李曾淳)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이다. 종조숙(從祖叔) 태고재(太古齋) 김휘약(金輝鑰)으로부터 글을 익혔으며, 후에는 족부(族父)인 희재(希齋) 김휘준(金輝濬)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85년(고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889년(고종 26) 성균관에 입학했다. 1891년(고종 28) 어려서 글을 가르쳐주던 김휘약이 죽자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편자는 저자의 아들 김구진(金龜鎭)과 생질 권정섭(權廷燮)이다.

서지사항

7권 3책의 석인본이다.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1996년 경인문화사에서 한국역대문집총서 No.1673 『석강선생문집』으로 재간행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936년 저자의 아들 김구진과 생질 권정섭이 편집 · 간행하였다. 권말에 김동진(金東鎭)의 발문과 김사진(金思鎭)의 지(識)가 있고, 끝에 권정섭의 발문이 있다.

구성과 내용

권1·2에 시 121수, 서(書) 53편, 잡저(雜著) 3편, 서(序) 5편, 권3∼5에 기(記) 2편, 발(跋) 10편, 상량문(上樑文) 2편, 제문(祭文) 17편, 뇌사(誄辭) 2편, 묘지명 12편, 묘갈명 9편, 묘표 3편, 행장(行狀) 5편, 유사 3편, 권6·7에 부록으로 유사 · 행장 · 묘지명 · 묘갈명 각 1편이 수록되어 있고, 끝에 『성계일고(惺溪逸稿)』가 합록되어 있다.

시는 이만도(李晩燾), 김정규(金鼎奎), 황적하(黃迪夏) 등에 대한 만시(輓詩)와 「차박치옥(승진)고우신거운(次朴穉玉(勝振)古愚新居韻)」, 「차이경현(세갑)읍춘정운(次李敬玄(世鉀)挹春亭韻)」 등의 차운시(次韻詩)가 대부분이다. 시운이 청절하나 망국의 한이 은연중 토로되어 애상조의 작품이 많다. 「송대석조(松坮夕眺)」 · 「엄호유감(掩戶有感)」은 나라가 망한 뒤 만목상심의 애한이 서린 것이고, 「입춘음(立春吟)」 · 「제석(除夕)」 · 「춘한(春寒)」 등은 계절의 변화에 망국의 한을 실어 묘사한 것이다. 안동 출신의 유학자 유도수(柳道洙)가 길주(吉州)로 떠날 때 지어서 올린 「봉정유공(도수)길주비행(奉呈柳公(道洙)吉州匪行)」, 선성의 어르신들과 신암(新巖)에 간 사실이 확인되는 「여선성제로장부신암체우숙이중원(중철)가임별서증(與宣城諸老將赴新巖滯雨宿李仲圓(中轍)家臨別書贈)」 등 저자가 교유한 인물들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있다. 그 밖에 유람시로 「을묘추약홍계능(승만)김문현정중건발자해행재탄도중구점(乙卯秋約洪繼能(承萬)金文顯鄭中建發紫海行才炭道中口占)」, 「숙송천정(宿松川亭)」, 「유완령(踰菀嶺)」, 「숙옥천화수루(宿玉川花樹樓)」, 「어대관해(魚坮觀海)」, 「남경대범주(攬景臺泛舟)」 등이 있다.

서의 「여하석이장(與霞石李丈)」은 이학수(李學洙)에게 보낸 것으로 망국에 대한 울분과 학문이 쇠퇴해 감을 개탄한 것이다. 「답김석조(答金錫祚)」의 별지는 『대학』의 삼강령과 팔조목을 위주로 심성의 학문을 다룬 글로 저자의 치밀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이 잘 나타나 있다. 조카들과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는 대부분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그밖에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인(李晩寅), 이학수, 유도귀(柳道龜) 등과 안부를 묻거나 상(喪)을 당한 것에 대한 위로, 세상에 대한 개탄 등을 담은 내용이 다수 있다.

잡저의 「북벽김선생찬(北壁金先生贊)」은 영남지방에서 기인으로 알려진 김홍제(金弘濟)의 학문과 기행을 기록한 것이고, 「원주변씨충효록서(原州邊氏忠孝錄序)」는 원주변씨 가문에서 출생한 백산(柏山) 변경회(邊慶會)와 봉은(鳳隱) 변극태(邊克泰) 두 사람의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신성인한 행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서의 「오종합계서(五宗合契序)」는 저자의 문중에서 고조부(高祖父), 증조부(曾祖父), 조부(祖父), 자(子), 손(孫)의 5대가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고 조상을 바르게 받들기 위한 계를 조직하고 지은 글이다.

기의 「경모재기(景慕齋記)」는 안동권씨 충장(忠莊) 권율(權慄), 오봉(五峯) 권책(權策), 남곡둔옹(南谷遯翁) 권상길(權尙吉)의 시축(尸祝)을 모신 경모재에 대한 기문이다.

발의 「만수재문집발(晩修齋文集跋)」은 군자의 도리를 다하고 문장과 실천력까지 모두 뛰어난 권택모(權宅模)의 문집에 대한 발문이다.

상량문의 「청간당이건양송(淸澗堂移建梁頌)」은 1906년(광무 10) 청간당을 이건한 사실 등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제문의 「제족부희재선생문(祭族父希齋先生文)」은 저자의 족부이자 스승인 김휘준으로부터 학문과 시를 수창한 일 등을 언급하며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제태고재선생문(祭太古齋先生文)」은 저자의 종조숙이자 또 다른 스승 김희약을 40여 년 동안 모셨던 사실 등을 언급하며 스승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묘지명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추증된 김명흠(金命欽), 녹야당(鹿野堂) 장진(張溍), 송고(松皐) 이일초(李一初) 등에 대한 것이 있다.

묘갈명은 정운경(鄭云敬)에 대한 「고려숭록대부형부상서염의공정선생묘갈명(高麗崇祿大夫刑部尙書廉義公鄭先生墓碣銘)」을 비롯해 단구(丹丘) 황창술(黃昌述), 중화재(中和齋) 강응정(姜應貞) 등에 대한 것이다.

묘표에는 송대년(宋大年)에 대한 「심원당송공묘표(心遠堂宋公墓表)」 등이 있다.

행장의 「서계김공행장(西溪金公行狀)」은 저자의 선조인 백암선생(白巖先生)의 8세 적손(嫡孫)인 김영희(金永羲)에 대한 것이다. 그밖에 김규병(金奎炳), 이정호(李精浩) 등에 대한 것이 있다.

유사의 「희재선생유사(希齋先生遺事)」와 「태고재선생유사(太古齋先生遺事)」는 저자의 스승 김휘준과 김휘약의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 저자가 두 스승을 모실 때 있던 일들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의의 및 평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중반까지 살았던 저자의 작품을 통해 당대 지식인의 망국의 한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저자의 스승으로 안동 지역에서 학문으로 이름난 김휘약과 김휘준의 학문적 역량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김석, 『석강문집』
집필자
이은영(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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