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김도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김도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64년 김도현의 증손 김기팔(金奇八)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사위인 유동수(柳東銖)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49수, 송(頌) 1편, 소(疏) 2편, 서(書) 4편, 통문 11편, 지(識) 1편, 기 2편, 제문 2편, 창의전말(倡義顚末) 1편, 도해일기(蹈海日記) 1편, 권 3·4에 부록으로 초혼사(招魂詞) 2편, 만사 79수, 뇌문(誄文) 9편, 제문 18편, 유사·행장·비·전(傳) 각 1편, 통문 4편, 초록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나라를 위한 감정과 충심이 어린 강개한 것이 많다. 소 가운데 「의상팔조소(擬上八條疏)」는 1897년에 올린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집을 보전할 수 없고 임금이 없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1895년 8월에 있었던 참화와 11월에 선언한 독립의 처사는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고, 명칭은 독립이지만 그 실상은 망국의 전철을 밟은 것이므로, 역적을 토멸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는 등 8개 조항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다.

「의청토적복수소(擬請討賊復讐疏)」에서는 일본의 본을 떠서 개화라는 것을 실천하고자 함은 망국의 시초가 된다고 지적하고 1905년 12월에 체결한 조약은 망국의 행위임을 규탄하면서, 이완용(李完用) 등 5명의 역신을 주륙(誅戮)하고 국권을 회복할 것을 청하였다.

서 가운데 「답병대장(答兵隊長)」에서는 국가의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방의 책임을 진 사람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임을 강조하였다. 「여국내동포(與國內同胞)」에서는 나라가 망해 가는 판국에 85세의 노모 때문에 목숨을 버려 나라에 충성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국민 모두가 궐기해 빼앗긴 국권을 찾고 자주된 나라를 이룩하자고 호소하였다.

「창의전말」은 1895년(고종 32) 8월 11일 국모의 시해에 분기하여 이듬해 9월에 의병을 일으켜서 항쟁한 기록을 일기체로 적은 것이다. 한말 의병항쟁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그밖에 고종의 밀조를 받아 그 사실을 삼남 지방에 알리고 의병에 참가할 것을 권유한 「의격고삼남각군문(擬檄告三南各郡文)」과 「격고제도문(檄告諸道文)」 등이 있다.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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