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산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 초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김도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벽산집(碧山集), 벽산선생문집(碧山先生文集)
문헌/고서
편찬 시기
미상
간행 시기
1964년
저자
김도현(金道鉉)
편자
김기팔(金奇八)
권책수
4권 2책
권수제
벽산선생문집(碧山先生文集)
판본
석판본(石版本)
표제
벽산집(碧山集)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중앙대학교 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벽산문집』은 개항기와 일제강점 초기를 보낸 벽산 김도현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의병을 일으키는 한편, 경술국치를 겪은 후 절명시를 남기고 투신한 학자가 남긴 본 문집은 한말 의병 활동의 면모는 물론, 망국의 시점에 연로한 지식인의 애국심과 행동 양식을 함께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4권 2책 구성의 석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전한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 초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김도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4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저자 김도현(金道鉉, 1852~1914)의 자는 명옥(鳴玉), 호는 벽산(碧山),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일제의 만행으로 일어난 을미사변에 대한 저항으로 1896년(건양 1) 영양(英陽) 의병에 참여했다. 1910년 경술국치 때 목숨을 끊어 저항 의지를 드러내고자 하였으나 연로한 어머니 때문에 실현치 못했다. 1914년 모친이 사망하자 영해(寧海)의 관어대(觀魚臺)로 가서 유서와 절명시를 남기고 투신했다. 1962년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편자는 저자의 증손 김기팔(金奇八)이다.

서지사항

4권 2책의 석판본(石版本)으로 간행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중앙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964년 김도현의 증손 김기팔에 의해 편집 · 간행되었다. 권말에 저자의 사위 유동수(柳東銖)의 발문이 있다.

구성과 내용

권1·2에 시 48수, 송(頌) 1편, 소(疏) 2편, 서(書) 4편, 통문 11편, 지(識) 1편, 기(記) 2편, 제문(祭文) 2편, 창의전말(倡義顚末) 1편, 도해일기(蹈海日記) 1편, 권 3·4에 부록으로 초혼사(招魂詞) 2편, 만사(輓詞) 79수, 뇌문(誄文) 9편, 제문 18편, 유사(遺事) · 행장(行狀) · 비지(碑誌) · 비명(碑銘) · 전(傳) 각 1편, 통문 4편, 초록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글이 4편밖에 없어 많은 작품이 누락 또는 유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는 나라를 위하는 감정과 충심이 강개하게 어린 작품들이 많다. 그중 「탄시사(歎時事)」는 저작 시기는 미상이지만 나라 안에 풍랑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음을 밝혀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1년 후인 1896년 말에서 1897년(광무 1) 초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세상 일이 그릇되어 가는 것을 탄식하는 내용이다. 「동야영회(冬夜詠懷)」는 노중련(魯仲連)의 도해(蹈海)를 언급하고 있어 저자 또한 도해의 뜻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울령망동해구호일절(踰鬱嶺望東海口呼一絶)」은 1914년 11월 5일 작품으로, 바다에 투신하러 가던 중 영해의 울령을 넘다 동해를 바라보면서 읊은 것으로 우리나라가 무궁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소 가운데 「의상팔조소(擬上八條疏)」는 1897년(광무 1)에 올린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집을 보전할 수 없고 임금이 없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1895년(고종 32) 8월에 있었던 참화와 11월에 선언한 독립의 처사는 부당한 것임을 지적하고, 명칭은 독립이지만 그 실상은 망국의 전철을 밟은 것이므로, 역적을 쳐서 없애 버리고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 등 8개 조항을 시행할 것을 청한 것이다. 「의청토적복수소(擬請討賊復讐疏)」는 일본의 본을 떠서 개화라는 것을 실천하고자 함은 망국의 시초가 된다고 지적하고, 1905년(광무 9) 12월에 체결한 조약은 망국의 행위임을 규탄하면서, 이완용(李完用) 등 역신 5명의 죄를 물어 죽이고 국권을 회복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서 가운데 「답병대장(答兵隊長)」에서는 국가의 형편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방의 책임을 진 사람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임을 강조하였다. 「여국내동포(與國內同胞)」에서는 나라가 망해 가는 판국에 85세의 노모 때문에 목숨을 버려 나라에 충성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국민 모두가 궐기해 빼앗긴 국권을 찾고 자주된 나라를 이룩하자고 호소하였다.

제문 가운데 「제향산선생(소상시)(祭響山先生(小祥時)」는 경술국치 때 함께 순절하기로 약속했으나 연로한 모친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 저자와 달리 혼자 순절한 이만도(李晩燾)소상(小祥)을 맞이하여 그의 의리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창의전말」은 1895년 8월 11일 국모 시해에 분기하여 이듬해 9월에 의병을 일으키고 항쟁한 기록을 일기체로 적은 것이다. 한말 의병항쟁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그밖에 고종의 밀조를 받아 그 사실을 삼남 지방에 알리고 의병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 「의격고삼남각군문(擬檄告三南各郡文)」과 「격고제도문(檄告諸道文)」 등이 있다.

부록의 「도해일기」는 저자의 작품은 아니고, 저자의 손자 김여래(金礪來)가 저자가 동해에 투신하기 위해 1914년 11월 2일 집을 나서면서부터 동해에 투신할 때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는 저자가 의병을 일으킨 동기와 과정 등 간략한 행적도 함께 서술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저자의 문학적 역량은 물론 저자가 참여한 한말 의병 활동의 면모를 비롯해 경술국치를 겪으면서 시대 상황에 대해 고뇌하고 투신에까지 이른 연로한 지식인의 애국심과 행동 양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김도현, 『벽산문집』
집필자
이은영(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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