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익 ()

유교
인물
조선시대 공조좌랑, 연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익지(翼之)
묵재(默齋)
시호
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81년(선조 14)
사망 연도
1636년(인조 14)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공조좌랑|연산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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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공조좌랑, 연산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金襀)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8년(인조 6) 의금부도사, 1630년 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 1631년 감찰, 1632년 공조좌랑을 거쳐 연산현감(連山縣監)이 되었다. 청렴결백하고 정치의 화평에 힘써서 군이 태평하였다고 한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관찰사 정세규(鄭世䂓)가 군병을 모집하자 80여세의 어버이가 계셨으나, 군기차사원(軍器差使員)으로 2,400여명을 인솔하고 수원산성에 이르러 감찰사와 논의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험천(險川)에 이르러 적병과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좌승지에 증직되고, 영조 때 정려를 받았으며, 뒤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묵재실기(默齋實紀)』 3권 1책이 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묵재실기(默齋實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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