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金襀)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8년(인조 6) 의금부도사, 1630년 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 1631년 감찰, 1632년 공조좌랑을 거쳐 연산현감(連山縣監)이 되었다. 청렴결백하고 정치의 화평에 힘써서 군이 태평하였다고 한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관찰사 정세규(鄭世䂓)가 군병을 모집하자 80여세의 어버이가 계셨으나, 군기차사원(軍器差使員)으로 2,400여명을 인솔하고 수원산성에 이르러 감찰사와 논의하고,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험천(險川)에 이르러 적병과 분전하다가 순절하였다.
좌승지에 증직되고, 영조 때 정려를 받았으며, 뒤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묵재실기(默齋實紀)』 3권 1책이 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