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8월 25일부터 『서울신문』(기존의 『대한매일』) 문화면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977년 7월 25일부터 사회면으로 옮겨 게재되었다. 추상적인 형태의 머리모양을 한 30대 전후의 현대여성인 주인공 까투리여사는, 조그마한 개인회사의 고참 말단사원인 남편 장끼와 외아들 장뚱이의 세 식구로 핵가족을 이루고 있는 도시서민층의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항상 침울하고 허약한, 내성적인 성격의 남편에 비해 활발하고 명랑한 외향성의 까투리여사는 주변의 일이나 사회적인 화제거리, 뉴스 등의 내용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에 대한 비난·규탄·찬사·격려·위로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분명하게 표출하는 깔끔하고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여성이다.
「까투리여사」는 연재 초기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정책문제나 돌발적인 사건·사고들을 상습적이고 의도적으로 비판, 시비하는 그 무렵의 다른 연재만화들과는 달리, 같은 소재의 시사문제라도 그 비판형식을 우회적이고 부드러운 간접기법으로 표현하는 등, 주로 생활주변의 이야기들에 비중을 둔 가정만화였다.
그러나 1972년 4월에 신문사의 경영책임자와 편집책임자가 새로 취임함에 따라, 편집성향이 바뀌어 연재만화의 제작태도와 작품의 성격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따라서, 종래의 가정만화 형식에서 다른 신문들과 같은 성향의 만화로 점차 변모되어 갔다.
그 무렵 농림부에서는 농민들의 농외소득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보통작물 특수재배, 특수작물 재배, 특수동물 양육 등 농가부업의 권장사업정책을 폈고, 이에 따라 전국의 농가에서는 이러한 생산사업이 큰 유행을 일으켜, 생산은 과잉되었으나 판로대책의 부진으로 수많은 농가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로 인한 농민들의 원성이 『서울신문』의 사회면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러한 농림부의 권장사업을 소재로 한 1972년 6월 19일자 「까투리여사」의 만화내용이 그 때 마침 추진되기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비방한 만화로 오해되어 필화를 입게 되었다.
초판(1판)에 나간 이 만화가 문제되자 2판 때에는 다른 만화로 대체했으나, 결국 6월 말에 작가가 권고사직을 당하고 「까투리여사」는 6월 19일자 제1488회로 중단되었다. 그 뒤 5년 후인 1977년 7월 25일부터 재등장하여 중단 당시의 연재횟수를 연계, 제1489회부터 다시 계속되어 1994년 8월 31일까지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