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왈순아지매」는 1950년대 여성 월간잡지 『여원(女苑)』에서 탄생되어 인기리에 연재되다가 1960년대에 신문으로 자리를 옮겨와 게재되기 시작하였다. 1964년 9월 21일 『대한일보(大韓日報)』에 처음 등장하여 1967년 9월 29일까지 게재횟수 없이 장기 연재되었으며, 1967년 10월 2일부터 1975년 1월 1일까지 『경향신문(京鄕新聞)』에 2,236회 실렸다. 1975년 1월 6일부터는 『중앙일보(中央日報)』 사회면에 등장하여 장기 연재되었다.
주인공 왈순아지매는 현대적이면서도 고급스럽지 않은 머리 모양에 작은 눈, 귀여운 코와 늘 웃음을 머금은 큰 입 등 복스러운 얼굴에, 쾌활하고 명랑하며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행동파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다방면으로 유식하기도 한, 억척스러운 30대 전후의 가정부로 등장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신문에 등장한 초창기에는 사회적·가정적 문제들의 목격자나 증언자의 입장에서 활약하는 정도였으나, 이후에는 그녀가 모시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는 거의 무시되고 그녀가 안방을 차지한 여주인처럼 매일 나서서 활동하였다.
어느 평범하고 소박한 도시 서민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가정만화 형식의 시사만화로, 주인공 ‘왈순’이가 그녀의 주인아저씨와 함께 모순된 세태나 사회의 부조리 등을 매섭게 비꼬고 풍자함으로써 지식층·서민층의 구별없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1968년에는 롯데공업주식회사에서 생산한 라면의 제품 이름을 「왈순아지매」와 비슷한 ‘왈순마’라 붙이고 상품의 그림도 ‘왈순’과 비슷하게 그려 선전·판매하다가, 작가의 저작권침해 고발로 제소되어 정운경의 승소로 판결된 사건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1983년 8월에는 만화 내용이 문제가 되어 제소를 당한 필화사건이 있었다. 1983년 8월 15일 각계각층의 정성으로 모아진 성금으로 독립기념관 기공식이 있었는데, 기공식이 진행된 다음날인 8월 16일자 「왈순아지매」는 이 기공식 기념행사의 하나로 펼쳐진 불꽃놀이의 화약값을 소재로 비판적인 내용을 실었다.
만화가 나가자 이 사업을 맡고 있는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서 만화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왜곡보도로 추진위원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여 언론중재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사건이 확대되었다가 작가와의 타협으로 해결되었다. 1999년 7월 말 『중앙일보』에서 연재횟수 7,789회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