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19년(760)에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향가. ≪삼국유사≫ 권5 월명사 도솔가조에 전한다. 760년 4월 초하룻날 두 해가 함께 나타나서 10여일간 없어지지 않자, 왕이 일관(日官)의 청으로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하였다.
왕이 청양루에서 연승(緣僧)인 월명사를 만나 단(壇)을 열고 계(啓)를 지으라 하여, 월명사가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형식은 4구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띄어쓰기에서는 3분절되어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 이에 산화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 받아
미륵좌주 뫼셔라. (梁柱東 해석)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隱花良汝隱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유창균(兪昌均)은 “오ᄂᆞᆯ 이ᄃᆡ 散花(산화) 브르라/돌보ᄉᆞᆯ본 고라 너흰/고ᄃᆞᆫ ᄆᆞᄉᆞᄆᆡ 命人(명인) 브리아기/彌勒座主(미륵좌주) 모리라라.” 라고 읽은 바 있다. 이러한 독법에 의해 ‘오늘 이곳에 모든 화랑(花郞)을 부르는 바라. (나라의)은총을 입고 있는 화랑 너희들은, 한결같이 굳은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여기에 미륵좌주를 뫼셔 받들 것이로다.’라고 해석하였다.
이 작품을 김동욱(金東旭)은 미륵청불(彌勒請佛)의 불교가요로 보는가 하면, 김열규(金烈圭)는 <구지가 龜旨歌>와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으로 본다. 즉 김열규는 <구지가>를 전통적인 주사(呪詞)에 직접 맥을 대고 있는 주사적 양식의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한편 김종우(金鍾雨)는 ‘미륵좌주’라는 말을 낭·불융합(郎佛融合)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특한 용어로 보고, 작품은 순불교적인 가요로 각각 파악하였다.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 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상계와 인간계의 대응관념으로 보았을 때, 해는 곧 왕에 대응된다. 하늘의 두 해 중 하나는 현재의 왕에 도전할 세력의 출현을 예보해 준다. 이러한 세력의 출현은 혼돈을 빚고, 그래서 이 혼돈을 조정할 행위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와같이, 왕권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조정하기 위하여 행해진 의식이 산화공덕이고, 이 의식에서 불린 노래가 <도솔가>이다.
그러나 이 산화공덕은 순수한 불교적인 관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재래신앙의 차원에서 불교의식을 수용한 상태의 것이다. 즉, 재래의 천신숭배사상에다 시조강림관념은 쉽사리 미륵하생관념(彌勒下生觀念)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변용되어 미륵좌주로 나타난 것이다. 거기에 계를 지으라고 함에 향가로 대신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국가태평 또는 평정을 기원하는 제의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신을 불러내는 말이 재래 양식 그대로 쓰이고 있다. 다만 시대적인 상황의 변천에 따라 불교적인 미륵하생관념이 혼융되기는 하였다.
즉, 위협적인 모습은 인심의 순화에 따라 완곡의 표현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명령법이라는 것이 아직도 작품에 그대로 남아 있어, 고대 제의에 사용되던 주가적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