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체암(遞菴) 나대용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거북선 건조에 전력을 기울인 실질적인 공로자이다. 1556년(명종 11)에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1583년(선조 16) 훈련원 별시무과에 응시, 병과로 합격하였다. 고향인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동에서 10여년간 거북선 설계도와 제작과정을 연구한 후 마을 앞 방죽골에서 첫 시험을 끝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을 찾아가 거북선 제작을 협의하여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았으며, 그후 임란이 일어나자 거북선 3쌍을 처음으로 진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충무공전서』, 『난중일기』, 『나주읍지』, 『호남동순록』,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생가의 대지는 뒷면이 죽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맞담과 생울타리로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건물의 구성을 살펴보면, 본채는 남남서향을 하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에 건물의 전후좌우에 툇간을 가진 一자집인데 본채만 남아 있다. 평면구성은 좌측에 부엌과 부엌방이 상ㆍ하 복렬로 배치된 겹집이다. 툇마루는 전퇴와 우퇴에 부분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안방문 위에는 경모당(敬慕堂)이라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다. 본채는 막돌 허튼층 쌓기를 한 50cm 정도 높이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나무 뼈대에 흙을 바르고 강회로 마감한 심벽구조의 벽체를 사용하였다. 용(用)자창과 띠살창을 혼용하였으며, 대청과 부엌은 판장문을 달았다. 방에서는 반자를 두어 천장을 만들었고, 부엌과 대청은 서까래를 노출하고 강회로 마감한 연등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홑처마를 사용한 초가우진각 건물이다.
묘소는 생가가 있는 마을에서 약 3km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