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석씨(昔氏). 제9대 벌휴이사금의 태자인 골정(骨正)과 둘째아들 이매(伊買)가 일찍 죽고 적손인 골정의 아들 조분(助賁)이 아직 어리므로, 이매의 아들 내해가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며 비는 조분왕의 누이 석씨로서, 사촌간에 근친결혼을 하였다.
자녀로는 태자 우로(于老)와 병마사(兵馬事)를 관장하였던 이벌찬 이음(利音)이 있었다. 그밖에 조분왕의 비가 된 딸 아이혜(阿爾兮)가 있다. 재위기간 동안 백제와의 전투가 빈번하였다. 199년에 백제군이 국경을 침범한 뒤, 214년에는요거성(腰車城)에 쳐들어 오자 반격하여 백제의 사현성(沙峴城)을 함락시켰다.
그 뒤 백제가 장산성(獐山城 : 지금의 경상북도 慶山)을 침입했으나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격퇴하였다. 또, 222년에도 백제가 우두주(牛頭州 : 지금의 春川)를 침입하였다고 하나, 당시 이곳은 신라의 영토 밖이므로 믿을 만한 기사는 못 된다. 그밖에 209년(내해이사금 14) 7월에 경남 해안지역에 위치한 포상(浦上) 8국이 금관가야를 침략하자, 태자 우로와 왕자 이음이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8국의 장군을 잡아 죽이고, 그들이 노략한 가야인 수천인을 빼앗아 돌려보낸 바 있다. 재위 35년이 되는 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