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여성(汝成), 호는 소암(小庵). 아버지는 참봉 노응세(盧應世)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구도(求道)에 뜻을 두어 일찍이 김대유(金大有)에게 수학하였으며 이황(李滉)에게 사사받았다.
45세가 되던 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향리인 영천에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여 문운을 진작시켰다.
1553년에는 김응생(金應生)·정윤량(鄭允良) 등과 뜻을 모아 영천의 부래산(浮來山) 밑에 임고서원(臨皐書院)을 창건하고 정몽주(鄭夢周)를 제향하게 하여 유학의 진흥에 공헌한 바가 컸으며, 스승인 이황으로부터 하사품인 『성리대전(性理大全)』 한질을 물려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경신잠(敬身箴)』·『삼성잠(三省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