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13년간 거주하였다.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영통을 체험, 접신현상이 있었다고도 한다. 귀국 후 6·25사변을 거치면서 3남매를 잃고 남편마저 객사하자, 낙망하고 있던 중 대전 보문산으로 가라는 단군의 계시를 받고 보문산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수도하면서 양준룡(梁準龍)이라는 사람을 만나 1955년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에서 용화불사(龍華佛寺)라는 이름으로 교를 창립하였다. 1970년 12월 13일 정오에 내린 단군의 계시에 따라 1973년부터 교명을 ‘단백교’로 불렀다.
한때 대종교에 입교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대종교 본사에서 표창장까지 내린 적이 있었던 용화불사는 1980년대까지 태고종 사찰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재산보호를 위한 명목이었을 뿐이며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고 있었다. 교주는 병약한 사람들에게 안찰을 하고, 옥수(玉水 : 약수)를 음복하게 함으로써 치병(治病)도 한다고 한다.
1986년 당시 신도수가 약 300명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로, 김판례 여인이 수차에 걸친 수술로 쇠약해지자 침체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한때 태고종과 대종교인들도 드나들었다고 하나, 1990년대 이후로는 존속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신앙의 대상은 단군국조이며, 앞으로 전개될 용화세계의 주인인 미륵불과 천지보살(天地菩薩)·관세음보살·노자·관운장·옥황상제·산신·칠성 등을 모시고 있다. 1967년에 조성한 단군탑에 봉안된 단군좌상(檀君坐像)은 신라시대의 왕관을 쓰고 있으며, 손에는 염주를 들고 허리에는 단검과 돈주머니를 달고 있다.
단군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병·가난·싸움·흉사(凶事)를 좌우하는 조상신이기 때문에 잘 받들어야 된다고 가르친다. 특이한 것은 속칭 삼신할머니를 가리키는 비서갑귀자모(匪西岬鬼子母)를 단군부인으로 모시고 그 상을 봉안한 것이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법회를 가지고 있으며, 교주가 단군의 계시를 받아 내려주는 토설(吐說)을 받아쓴 경을 읽고, 실천하는 것이 수양의 중요방법이다.
교인들은 회색 도포를 입는데 어깨에는 단지국합묘대성(檀地國合妙大聖)’이라고 쓴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별을 수놓은 띠를 동여 매는데 별의 숫자에 따라서 교인의 신앙 깊이와 연륜을 나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