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공노비 신공수납은 중앙에서 수납원이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각 관서의 두목(頭目)·색리(色吏)들이 중간에서 수납하여 한성으로 수송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중간 소임을 하는 두목들을 방언으로 ‘달화주’라고 하였다.
이 명칭은 호인(胡人)을 뜻하는 ‘달로화적(達魯花赤)·다루가치’라는 용어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변화과정은 알 수 없다. 다만, 두목을 달화주라고 부르게 된 것은 노비들이 신공을 납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 수납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데서 기인하였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