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08.1㎝. 정교한 연주문(連珠文)과 세밀한 꽃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진 높다란 보관을 쓰고 있다. 이는 고려 이래의 전통을 계승한 14세기 말∼15세기 초의 특징을 보여준다.
양감 있는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지만 박력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특징은 보관과 함께 문경 대승사 금동보살상과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상체는 장대하고 어깨는 둥글면서도 당당하다. 가슴도 젖가슴의 양감은 없지만 건장한 편이어서 역시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오른발을 위로 한 길상좌(吉祥坐: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놓은 모습)의 자세로 앉아 있는 이 보살상은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었다. 그리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이른바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어서 아미타협시보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는 두께 있는 통견의(通肩衣)를 입고 있다. 옷 주름이 간결하지만 전체적으로 장중한 편이다. U자형으로 넓게 벌린 가슴에는 승각기가 가슴 위로 많이 올려져 수평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에 띠 매듭으로 규칙적 주름을 지게 묶고 있다. 이러한 승각기 표현은 왼쪽 팔꿈치의 W자형 옷주름과 함께 조선 초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1394년(태조 3)의 영덕 장륙사 건칠보살상(盈德莊陸寺乾漆菩薩像)이나 문경 대승사 금동보살좌상 등과 비슷하다. 더 내려가면 1464년(세조 10)의 원각사탑 부조상과 1476년(성종 7)의 무위사 벽화 및 불상 등과 상통한다. 특히 가슴과 팔·다리 등에 화려하고 번잡하게 장식하고 있는 영락(瓔珞) 장식들도 영덕 장륙사 건칠보살상 등에 나타나는 이 시기의 특징인 것이다.
이 보살의 복장기(腹藏記)에 적힌 1447년(세종 29)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조성 시기의 하한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 제작 연대는 14세기 말 아니면 15세기 초의 조선 초기 보살상으로 판단되며, 이 시기 보살상의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