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광배는 없고 대좌와 불신만이 남아 있다. 이 불상의 등에는 조성기가 새겨져 있어 865년(경문왕 5)에 만든 불상이라는 점과 강원도 철원군의 신도 조직인 1,500인의 거사(居士)들에 의하여 조성된 대중적인 불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육계(肉髻)의 표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얼굴은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963년 지정)보다 훨씬 빈약하며,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963년 지정)보다도 좀 더 섬약하다. 코의 평탄적인 처리는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하지만 보다 빈약하다. 눈이나 입 같은 세부적인 표현 또한 섬약하다.
어깨는 아주 움츠린 모습이 아니고 무릎에 비해 넓은 편이어서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신체는 평판적이고 섬약한 편이며, 가슴 · 손 · 다리에는 양감이 표현되지 않았다. 불의는 통견의(通肩衣)로 가슴이 넓게 터졌으며, 승각기 같은 내의의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주목된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 또한 불상의 양식적 특징과 동일하다. 전체 형태는 이 시대에 유행한 팔각연화좌(八角蓮花座)이며, 상 · 중 ·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는 단판앙련화문(單瓣仰蓮花文 : 홑잎의 연꽃잎이 위로 향하고 있는 무늬), 중대는 8각형, 하대는 단판복련화문으로 조성되었다. 긴 귀꽃과 중대 아래 받침을 둔 것은 이 시대 대좌의 가장 대표적인 형식적 특징이다.
이 불상은 당대에 유행하던 철조불상으로, 섬세하고 평판적인 양식이나 형식적 특징에서 9세기 후기 불상의 한 형식을 정립한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