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0.4m.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여러 장의 장대석으로 구성된 3단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단층기단과 칠층탑신을 차례로 올려놓았다. 지대석의 2·3단은 3매의 장대석으로 쌓았는데, 상층에는 2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기단(基壇)을 받고 있다. 이처럼 지대석을 3층으로 구성한 것은 칠층석탑을 받치기 위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단층으로 조립된 기단의 각 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1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히 새겨졌는데, 상면에는 갑석(甲石)을 놓았다. 1매의 판석으로 구성된 갑석의 상면은 평박하게 처리하였는데, 하면에는 기단과 맞닿은 곳에 낮은 각형 1단의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조출하였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탑신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새겨졌는데, 1·2층에는 각 면 1주씩의 탱주가 새겨져 있고, 초층탑신의 한 면에는 문비형(門扉形)과 함께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다. 옥개석의 하면에는 층마다 3단씩의 옥개받침이 조출되어 있는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게 조성되어 있다.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전각에 이르러 심하게 반전되어, 경사가 급한 낙수면과 조화를 이루며 옥개석 전체가 들려진 느낌을 주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가 남아 있다.
탑이 위치한 곳에는 본래 동방사(東方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성주(星州)의 지세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으로 동남으로는 성산, 서는 봉두산, 북으로는 다람쥐재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냇물이 성주읍을 돌아 동쪽으로 빠지고 있는데, 바로 냇물이 빠지는 길목에 칠층석탑을 세워 성주의 기운이 밖으로 빠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고 하여 지기탑(地氣塔)으로 전하고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이 3단으로 구성된 점과 1층과 2층 탑신부에 탱주가 새겨진 점 등 다른 석탑에 비해 독특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7층석탑이라는 규모와 기단부의 수법, 옥개의 양식 등을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석탑의 성격은 주변의 자연지세 등을 고려해 볼 때 전설과 같이 풍수지리설에 입각해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