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5년(공민왕 4) 최해(崔瀣, 1288∼1340)가 신라와 고려 명현의 시문집 중에서 오언시와 칠언시를 모아 간행한 시선집으로 『동인지문오칠』 가운데 남아있는 권7∼권9이다.
최해의 「동인지문서」에 의하면, “신라 최고운(崔孤雲)에서 충렬왕 때까지 명가로부터 시 약간 수를 얻어 오칠(五七)이라 제명하고, 변려문 약간 수를 얻어 사륙(四六)이라 제명하고, 총괄하여 동인지문(東人之文)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곡(李穀)이 지은 『최군묘지명(崔君墓誌銘)』에는 “본국 명현의 저술을 찬집하고 그 제명을 동인지문이라 하였는데, 모두 25권이다”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보면, 『동인지문』의 편차는 오칠, 천백, 사륙의 순으로 구성되었고, 총 권수는 25권임을 알 수 있다.
『동인지문사육』은 전질이 15권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동인지문오칠』과 『동인지문천백』은 발견된 것이 없다.
『동인지문오칠』의 잔본 권7∼권9가 나와 9권임이 확인되었다. 『동인지문사륙』 15권을 합하면 24권이 되며, 나머지 1권은 천백으로 추정된다.
권7의 앞부분과 권9의 뒷부분이 떨어져나가 간행연대를 확인할 수 없다. 사륙 권15 후미의 '지정(至正) 15년 을미 8월 복주(福州: 안동) 개판'이라는 간기가 있는데, 이것을 『동인지문』의 간년으로 보아 무방하다.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동인지문오칠 권7~9(보물, 1991년 지정). 3권 1책(권7∼권9). 목판본.
『동인지문오칠』권7∼9에 의하여 『동인지문오칠』의 편성체재를 살펴보면, 인물을 표제(標題)로 하여 시대별로 배열하였다. 인물의 아래에는 먼저 간략한 전기가 나오고, 다음에 오언고시 · 칠언고시 · 칠언율시 · 오언배율 · 오언절구 · 칠언절구의 순으로 수록되었다. 그리고 비점(批點)과 주해를 붙였다.
『동인지문오칠』의 현존본에는 고려 명종 때의 김극기(金克己) · 유승단(兪升旦)에서 충숙왕 때의 오한경(吳漢卿)에 이르는 26인의 시 159수(131 제목)가 수록되어 있다. 완질이 아니고 앞뒤 부분이 일부 떨어져나간 것이다.
『동인지문오칠』은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오칠의 구성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고려 판각본으로 고려 문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 만큼 서지학 · 한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제목 아래의 각 인물의 소전(小傳)은 전기자료로서의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