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목판본. 남구만(南九萬)의 아들 학명(鶴鳴)이 수집, 정리해 판각한 것으로 간행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민서(李敏敍)·최석정(崔錫鼎)의 서문과 박태보(朴泰輔)·윤증(尹拯)·이탄(李坦)·오도일(吳道一) 등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1687년(숙종 13)에 오득천(吳得天)이 편집한 이본이 있는데, 편차가 약간 다르고 임진록(壬辰錄)의 자구(字句)가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부록에 문덕교의 아우 선교(善敎) 등의 사적을 싣지 않고 송시열(宋時烈)의 「창의사우기(彰義祠宇記)」를 끝에 첨부한 것이 다르다.
제1은 내송(內訟)으로 자가병통(自家病痛)·자탄(自嘆)·오불원(五不願)·자책(自責)·중야오탄(中夜寤嘆)·경한협배(驚汗浹背)·위선(爲善)·광약계(狂藥戒) 등의 조목과 절구 3수, 제2는 습유(拾遺)로 오잠(五箴)·시 36수, 제문 1편, 임진록 1편, 부록으로 선교의 사적과 그 어머니에 관한 자료 등 문씨일가의 사적을 아울러 수록하였다.
이밖에 본인의 묘지명과 차천로(車天輅)의 「동호별업십영(東湖別業十詠)」·「제해월헌(題海月軒)」, 김상헌(金尙憲)의 「동정평유사군숙문흥덕동호초당(同定平柳使君宿文興德東湖草堂)」·「동호십영(東湖十詠)」 등이 실려 있고, 한기백(韓紀百)의 「동호선생문공행장(東湖先生文公行狀)」이 있다.
시문들은 대체로 질박한 느낌을 준다. 이민서도 그의 순박하고 군자적인 면모를 말한 다음, 시의 특징이 북방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습유에 수록된 「임진록」은 함경도지방에서 보고 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형편을 기록한 것인데, 정사에 없는 사실을 간결하고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