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연활자본. 1867년(고종 4)의 초간본과 1963년의 재간본에 이어서 1986년에 그의 후손 성래(性來)·현제(賢濟)·봉래(鳳來) 등이 저자에 관계되는 문헌을 수집, 구본을 대본으로 편집하고, 용태(鏞泰)의 번역문을 붙여 인제(仁濟)가 간행하였다. 권수에 저자의 신도비·반구정(伴鷗亭) 등 사진 10여 매를 실었으며, 권두에 허전(許傳)의 서문과 권말에 후손 성각(性珏)·성수(性洙) 및 안용호(安龍鎬)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은 시 28수, 잡저 6편, 권2·3은 부록으로 발·녹(錄)·지(誌)·행장·신도비명·반구정기·장계(狀啓)·관문(關文)·소·상량문·유허비명·십충록(十忠錄)·용화동범록(龍華同泛錄)·임진창의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는 임진왜란 당시 저자가 의병이 되어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고 있을 때 정경세(鄭經世)로부터 격려해주는 시를 받고 화답한 시가 있다. 만사로는 병자호란 때 화친을 극력 배척하다 청나라에 잡혀가서도 끝끝내 절조를 굽히지 않고 그곳에서 참혹하게 피살된 삼학사(三學士: 홍익한·윤집·오달제)의 충절을 기리는 것이 있다.
1617년(광해군 9) 가을에 정구(鄭逑)와 함께 동래온천에 배편으로 가면서 이후경(李厚慶)·이도자(李道孜)·이윤우(李潤雨)·신지제(申之悌)·이서(李0x9A5F)·이육(李堉) 등과 더불어 배 안에서 낙동강의 수려한 풍경을 생동감 있게 읊은 화답시가 아울러 실려 있다.
잡저 가운데 「가훈팔목잠(家訓八目箴)」에서는 입지절(立志節)·근학문(勤學問)·명치도(明治道)·돈인륜(敦人倫)·숭례문(崇禮文)·정가법(正家法)·신국법(愼國法)·신서찰(信書札) 등을 조목별로 체계 있게 해설하고 아울러 서문을 붙였다.
「충효실감(忠孝實鑑)」에서는 사친사군(事親事君)의 방법 및 처변의 절실한 덕목을 경사(經史) 가운데에서 발췌, 자신의 서설과 병합해 조목별로 분류, 충효의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역시 서문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