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중적(仲積), 호는 죽계(竹溪). 개성(開城)에서 출생하였다. 남달리 영특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당대 문명이 높은 서경덕(徐敬德)에게 사사받아 학문의 깊은 뜻을 습득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오직 학문에만 전력하였다. 1581년(선조 14) 이이(李珥)가 천거하여 북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특히 그는 역학과 성리학에 심취하여 그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어느 날 윤두수(尹斗壽)가 찾아가서 그의 학자됨을 보고 “난초는 고랑에 깊었으나 그 향기 저절로 스며드네.”라 하여 그의 학문을 높이 칭송하였다. 개성의 사현사(四賢祠)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