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휴당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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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귀성의 만휴당문집 중 표지
황귀성의 만휴당문집 중 표지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학자, 황귀성의 시 · 기(記) · 상량문 · 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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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의 학자, 황귀성의 시 · 기(記) · 상량문 · 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내용

2권 2책. 석인본. 후손 극동(極東)의 교열 및 편집을 거쳐 이교선(李敎善)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익조(鄭翊朝)의 서문과 권말에 극동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시 7수, 서(書) 1편, 기(記) 2편, 상량문 1편, 잡저 1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가장(家狀)·묘갈명·묘갈음기(墓碣陰記)·만휴당전(晩休堂傳)·기사후서(記事後敍)·서행장후(書行狀後)·축문, 익양서당(益陽書堂)의 이건기(移建記)와 중수기(重修記), 낙성운(落成韻)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우국충정을 읊은 것이 많은데, 그 중 「도평양감분(到平壤感憤)」은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柳成龍)의 막하에 있을 때 평양에서 달 밝은 깊은 밤에 대동강 언덕을 거닐면서 지은 시로, 충분 강개한 뜻이 촉석루 삼장사(三壯士)의 시와 같다. 「억이순신(憶李舜臣)」은 이순신을 생각하면서 지은 것으로 우국충정이 넘쳐흐른다.

「난중기사(亂中記事)」는 1592년(선조 25)에 스승인 유성룡을 방문하기 위하여 서울에 가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된 유성룡의 막하에 들어가 7년간 있을 때 쓴 것이다. 그가 유성룡을 따라 선조를 호종(扈從)한 일과 유성룡이 안주(安州)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진무하고 군량을 준비하다가 명나라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 일, 그 뒤 유성룡이 충청·경상·전라 3도체찰사가 되어 파주(坡州)까지 진격한 일, 이순신이 순국하자 유성룡의 명을 받고 장례를 치른 일, 진주성에서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가 강에 투신하여 죽고 황진(黃進)이 전사한 일 등 임진왜란 당시의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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