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영조 51) 김영조의 5세손 김행원(金行源)·김택원(金宅源) 등이 유문을 수집하여 이세택(李世澤)의 교열을 거쳐 편집·간행한 듯하다. 권두에 이세택의 서문이 있다.
6권 4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3에 시·서(書), 권4에 소·차(箚)·계사(啓辭)·전(箋)·제문, 권5에 잡저·기(記)·묘표·행장, 권6에 부록으로 저자의 연보·행장·묘갈명·묘지명·만사·제문·봉안문·상향축문(常享祝文)·조천송별록(朝天送別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이 문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에는 정루(亭樓)와 산수의 자연을 읊은 것이 많으며, 최치원(崔致遠)·이황(李滉)·유진(柳袗)의 시를 비롯하여 당시(唐詩) 등을 차운한 것도 있다. 또한 유성룡(柳成龍)의 문집을 교정할 때 김윤안(金允安)과 서로 수창한 것이 있으며, 정구(鄭逑)를 비롯하여 당시 학문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에 대한 만사가 들어 있다.
서(書)에는 유진과 주고받은 서한이 많으며, 「팔영시(八詠詩)」등을 화답한 내용이 보인다. 소에는 대사헌을 사직하면서 시사를 논한 것과 흉년으로 인해 조세를 감축하자는 상소가 있다.
차에는 병자호란으로 인한 국가적 수치의 시사를 논한 것과 김상헌(金尙憲)을 신구(伸救)하자는 내용의 차자가 있다. 계(啓)에는 이우(李佑)에게 죄를 내리기를 청하는 장계가 있다. 제문에는 유성룡과 유진에 대한 것이 있다.
잡저의 「대북도유생정북백서(代北道儒生呈北伯書)」는 영남사람 정명시(鄭明時)가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을 죽여 살인죄로 귀양을 갔는데, 그 진상을 살펴보면 효도에 가깝다는 내용으로, 유생을 대표해 관찰사에게 보낸 변호 진정서로서 명문이다.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은 유진·김령(金坽)과 함께 경상북도 봉화에 있는 청량산을 구경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신라 때 김생(金生)이 10년 동안 글씨 공부를 하던 김생굴(金生窟) 등 고적을 소개한 명문으로 일기체로 되어 있다. 「서정록(西征錄)」은 1623년(인조 1) 모문룡(毛文龍)을 만나려고 평안북도 철산의 가도(椵島)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