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2책. 목판본. 1722년(경종 2) 조카 희조(喜朝)와 아들 광조(光朝)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희조와 광조의 발문이 있다. 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고, 규장각 도서에는 필사본이 있다.
권1∼5에 시 376수, 권6에 소(疏)·차(箚) 11편, 계사(啓辭) 11편, 권7은 부록으로 시장(諡狀) 1편, 묘지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평이하면서도 기상이 뛰어나고 격조가 높다. 그 가운데에는 관동지방의 명승고적을 읊은 것이 많고, 이경석(李景奭)·홍명하(洪命夏) 등 당시 명성이 높은 인물들에 대한 만사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소는 대부분이 사직소인데, 그 중 「진심경석의간행사소(陳心經釋疑刊行事疏)」는 당시 숙종이 『심경석의』를 간행하려 하자 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심경석의』는 이황(李滉)이 직접 감정(勘定)한 것이 아니고 그 제자 이함형(李咸亨)·이덕홍(李德弘) 등이 스승의 말을 기록한 것이므로 다소 소략한 점이 없지 않으나, 송시열(宋時烈)에게 대폭 수정을 가하게 하여 간행하자고 건의하는 내용이다.
차(箚) 중 「간원차자(諫院箚子)」는 1674년(숙종 즉위년) 대사간으로서 올린 것인데, 당시 거듭된 흉년으로 국고가 고갈되어 지방관청의 재정을 얻어 산릉(山陵)의 석물(石物)을 하여야 할 형편임을 지적, 효종의 능소를 옮길 때 보관되어 있는 석물을 다시 깎아서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검소의 미덕을 강조하였다.
그밖에 소·차와 계사 등에는 예론(禮論)에 관한 논의들이 있고, 그 예론을 통하여 송시열·허목(許穆)·윤휴(尹鑴) 등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