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 ()

목차
관련 정보
풍계집
풍계집
불교
인물
조선후기 『풍계집』을 저술한 승려.
이칭
취월(醉月)
풍계(楓溪)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0년(인조 18)
사망 연도
1708년(숙종 34)
출생지
서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풍계집』을 저술한 승려.
내용

성은 박씨, 호는 풍계(楓溪), 자는 취월(醉月). 서울 출신. 아버지는 원진(圓振)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리하여 마을사람들이 기동(奇童)이라고 불렀으며, 12세 때 춘천 청평사(淸平寺) 양신암(養神庵)으로 출가하여 의천(義天)의 제자가 되었다.

부모들의 환속하라는 권유가 계속되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13세 때 의천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편양파(鞭羊派) 풍담 의심(楓潭義諶)의 지도를 받으며 10년 동안 선(禪)과 불경을 공부하였다. 이때 의심의 법맥(法脈)을 이었으며, 1665년(현종 6) 스승 의심이 입적한 뒤,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선교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동문 사형인 상봉 정원(淨源)의 밑에서 공부하였다. 1690년(숙종 16) 은사인 의천이 해인사(海印寺)에서 죽자 그의 행장을 지었으며, 1704년 봄에는 청량산(淸凉山)에서 가야산 백련암(白蓮庵)으로 옮겨 그곳을 열반지(涅槃地)로 정하였다. 그해 성능(性能) 등이 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초청하였으므로, 정월부터 사월초파일까지 3개월 동안 경찬법회(慶讚法會)를 주관하였다.

그 뒤 해인사로 돌아와 6월 2일 다음날 죽을 것을 예언하였고 6월 3일 임종게(臨終偈)를 남긴 뒤 서쪽을 향하여 합장한 자세로 앉아서 입적하였다. 시문으로도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풍계집(楓溪集)』 3권이 있다.

참고문헌

『풍계집(楓溪集)』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李朝佛敎』(高橋亨, 寶文館, 1929)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