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박씨, 호는 풍계(楓溪), 자는 취월(醉月). 서울 출신. 아버지는 원진(圓振)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리하여 마을사람들이 기동(奇童)이라고 불렀으며, 12세 때 춘천 청평사(淸平寺) 양신암(養神庵)으로 출가하여 의천(義天)의 제자가 되었다.
부모들의 환속하라는 권유가 계속되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13세 때 의천을 따라 금강산에 들어가 편양파(鞭羊派) 풍담 의심(楓潭義諶)의 지도를 받으며 10년 동안 선(禪)과 불경을 공부하였다. 이때 의심의 법맥(法脈)을 이었으며, 1665년(현종 6) 스승 의심이 입적한 뒤,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선교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동문 사형인 상봉 정원(淨源)의 밑에서 공부하였다. 1690년(숙종 16) 은사인 의천이 해인사(海印寺)에서 죽자 그의 행장을 지었으며, 1704년 봄에는 청량산(淸凉山)에서 가야산 백련암(白蓮庵)으로 옮겨 그곳을 열반지(涅槃地)로 정하였다. 그해 성능(性能) 등이 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초청하였으므로, 정월부터 사월초파일까지 3개월 동안 경찬법회(慶讚法會)를 주관하였다.
그 뒤 해인사로 돌아와 6월 2일 다음날 죽을 것을 예언하였고 6월 3일 임종게(臨終偈)를 남긴 뒤 서쪽을 향하여 합장한 자세로 앉아서 입적하였다. 시문으로도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저서로는 문집인 『풍계집(楓溪集)』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