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제2 원성대왕조에 의하면 원성왕이 지해(智海)를 궁중으로 초청하여 『화엄경』을 강의하게 할 때 당시 사미(沙彌)였던 묘정은 태현(太賢)이 이름을 붙였다는 금광정(金光井) 가에서 바루[鉢盂]를 씻는 일을 맡았다.
그때 자라 한마리가 우물 속에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 것을 보고 매번 먹다 남은 밥을 자라에게 주었다. 법회가 끝나는 날, 묘정이, “내가 너에게 은덕을 베푼 지 오래 되었는데 너는 나에게 무엇으로 갚으려 하느냐?”고 하자, 자라는 목에서 구슬 한개를 토하였다.
묘정은 언제나 그 구슬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어느날 우연히 묘정을 본 원성왕은 그를 크게 소중히 여기고 내전(內殿)으로 맞아들여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 사신을 따라 당나라로 갔을 때 황제로부터 신하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정을 존경하고 좋아하였다.
그때 한 관상가가 그를 본 뒤 황제에게, “저 사미가 다복한 상이 아닌데도 남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것을 보면 기이한 물건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황제는 그의 몸을 검사하여 허리에서 구슬을 찾아내었다.
황제는 원래 4개의 여의주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난해 하나가 없어졌는데, 묘정이 가지고 있는 구슬이 잃어버린 구슬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구슬을 빼앗고 신라로 돌려보냈다. 그뒤부터 묘정은 남의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묘정의 생애 자체가 불교의 인과(因果) 및 복덕관(福德觀)을 단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