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때의 학자 성운(成運)과 김천부(金天富)가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건물이다.
성운이 을사사화로 그의 형 근(近)이 화를 당하자 뜻을 버리고 처가인 종곡리에 내려와 처남 김천부와 함께 숨어살던 작은 기와집이다. 1550년 경에 처음 지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87년(고종 24)에 후학들이 두 분을 사모하여 모현암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갖고 있는 소박한 집이다. 성운이 후사가 없어 이 건물은 현재 모현암 대곡 서당계 소유로 되어 있다. 모현암 대곡 서당계가 또한 관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