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는 전라남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의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조선전기(1476년경)의 관음보살도 벽화이다. 1476년에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후불벽화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벽화는 토벽에 황토색을 칠한 후 유려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렸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흰옷을 입고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있는 관음보살이 있다. 왼쪽 아랫부분에는 비구형 인물이 보살을 향해 예배드리는 모습을 배치하였다. 이 벽화는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과 선재동자, 공양자 등을 그린 벽화이다.
이 벽화는 극락보전의 후불벽 뒷면 토벽에 황토색을 칠한 후 유려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린 관음보살벽화로, 1476년에 후불벽의 아미타삼존벽화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벽면의 가운데에는 흰 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림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비구형 인물이 보살을 향해 예배드리는 모습을 배치하였다. 관음보살은 두광과 커다란 신광을 두르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채 두 손은 앞에 모아 엇갈리게 하여 오른손에는 버들가지, 왼손에는 정병을 들었다. 얼굴은 넓적하고 둥근 편으로 옆으로 긴 눈을 반쯤 내려뜨고 있다. 우뚝한 코 밑에는 팔(八)자모의 수염이 그려져 있고 커다란 귀와 함께 목에는 삼도가 뚜렷한데, 목이 굵고 어깨가 각지고 건장하여 전체적으로 당당한 체구의 강한 남성적인 신체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아미타불을 그린 관을 쓰고 있는데, 흰색의 천의가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양어깨를 감싸고 팔을 덮고 흘러내렸다. 간략화된 옷주름과 더불어 팔찌와 가슴장식 역시 간소화되어 있긴 하나, 힘있고 빠른 필치로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듯한 옷자락과 넘실대는 듯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 아래 구석 둔덕에는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벌려 손뼉을 치고 있는 듯한 자세의 늙은 비구가 보인다. 이 인물은 『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는 관음보살을 찾아가서 청법(聽法)하는 선재동자(善才童子)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불화에서처럼 나이어린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승복을 입은 나이든 승려의 모습인 점이 특이하다. 비구의 어깨 위에는 머리를 뒤로 돌려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있는 새 한 마리[靑鳥]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관음보살상의 주위로 화면 전체에 물결 모양을 그려 넣어 마치 보살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잎을 타고 넘실대는 물결 위에 서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림의 우측 상부에는 고려시대의 문인 유자량(庾資諒)이 쓴 오언율시, 즉 “바다가 높은 벼랑 아득한 곳, 그 가운데 낙가봉이 있으니 대성은 머물러도 머문 것이 아니고, 보문은 만나도 만남이 없네. 명주는 나의 바라는 바 아니지만, 청조와 이 사람은 상봉하였네. 오직 바라옵건대 푸른 물결 위에서 친히 만월같은 모습 뵈옵게 하옵소서”라는 내용의 낙산관음찬(洛山觀音讚)이 먹으로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1476년에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후불벽화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관음보살도벽화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관음보살이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채 두 손을 앞에 모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서 있고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앞면의 아미타후불벽화와 더불어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 벽화에서 선재동자 대신 노비구가 표현된 점이라던가 관음보살이 바다 위에서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모습, 노비구의 등 뒤에 있는 청조가 그려진 점 등으로 보아 이 벽화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동해 관음굴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였던 설화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