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9m.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본래 인근의 관음사지(觀音寺址)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팔려갔다가 갈평리 주민들이 다시 찾아와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기단(基壇)은 상 · 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기단의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한 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져 있다. 하층기단 갑석(甲石)의 상면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데, 상면에는 2단의 받침을 조출하여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역시 면석에는 양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정연히 새겨졌고, 상면에는 갑석을 놓았다. 상층기단 갑석의 하면에는 넓은 낙수홈이 마련되었고, 상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을 별도의 받침 부재(별석받침)처럼 조출하여 초층탑신을 받고 있다. 그리고 2층 옥신석 하단에 굽이 덜려져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탑신석에는 양 우주만이 새겨졌는데, 각 층은 상면이 하면에 비해 눈에 띠게 좁아지는 안쏠림 형태를 보이고 있어 이채롭다. 1층탑신은 2층에 비해 2배 정도 높게 조성하였고, 옥개석의 하면에는 낙수홈과 더불어 각 층 4단씩의 옥개받침을 조출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데,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轉角)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조출되었는데, 4층과 5층은 생략되었다. 정상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놓였는데, 5층옥개석에 이르기까지 지름 2.5㎝의 찰주공(擦柱孔)이 관통되어 있다.
갈평리오층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라시대에 개통된 계립령(鷄立嶺)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시대의 교통로와 문화전파 경로를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