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조선문예단이라고도 하였다. 유일단(唯一團)의 해산 이후 이기세(李基世)가 다시 유일단 단원들을 모아 1919년 4월에 조직하였다.
대구의 대구좌(大邱座)를 거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상경하여 우미관(優美館)에서 연쇄극(連鎖劇) <지기 知己>·<황혼>·<장한몽>·<코르시카의 형제> 등을 공연하였으나, 결국 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신작(新作)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신파극들을 공연하였고, 단원 중 유소정(柳小艇)이라는 여배우가 끼어 있어 이채를 띠었다.
당시 활약하였던 다른 극단들에 비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였고, 이 극단이 관중을 끌기 위하여 시작하였던 연쇄극도 순수한 연극의 발전에 독이 되는 연극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