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은 보천교(普天敎)의 간부로 있었는데, 강일순(姜一淳)을 증산불(甑山佛)의 출현으로 보아 강일순의 가르침이 미륵불의 용화세계(龍華世界) 건설에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에 유교의 정심사상(正心思想)을 혼합하여 미륵도(彌勒道)·정심도(正心道)·미륵정심도라는 이름으로 경상북도 포항에서 포교활동을 하였다.
광복 전 일제의 탄압으로 이렇다 할 활동을 못하다가 광복 이후 본격화하여 1960년대는 신도가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호정은 기존 불교사찰에 신도와 승려를 침투시켜 자신의 미륵불신앙을 보급시키면서 교세의 확장을 꾀하였다.
1965년도에 조계종 산하 경주 법장사에서 미륵정심교의 신도가 시인미륵주(侍人彌勒呪)를 외우며 비밀주송수련을 하다가 발각되어 경상북도 내 많은 사찰에 들어가 있던 이 교의 승려와 신도가 추방되기도 하였다.
1967년 이호정이 사망하면서 교세는 크게 위축되었다. 경상북도 포항에 본부를 두고 박찬규(朴贊圭)가 교주로 있었으나 지금은 소멸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이다. 교주 이호정을 미륵불로 보고 그의 영정을 걸고 치성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