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만 없을 뿐 대좌와 몸체[身部]로 이루어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머리 부분과 두 손 등이 파손되어 다소 어색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당당한 어깨, 양감 있는 가슴, 잘록한 허리, 사실성을 높여 주는 얇은 옷[大衣] 등으로 석굴암 불상이나 경상남도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8세기 중엽의 사실적이면서도 부처님의 이상적인 모습을 잘 계승하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좌세는 오른 다리를 위로 올린 항마좌(降魔坐 :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인데, 다리 각부의 양감도 살아 있는 편이다.
오른쪽 손은 팔꿈치 부분부터 수리한 것이지만 두 팔의 상태로 보아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손 모양)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대의(大衣: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 편단으로 입고 있다. 가슴의 옷깃 부분을 따라 얇은 층단의 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왼쪽 어깨에는 배 부분으로 비스듬히 U자형의 얇은 층단 주름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어깨나 팔·발목 부분도 얇은 층단 주름을 나타내고 있어서 8세기 중엽 이후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우아하고 사실적인 형태와 생동적인 양감은 8세기 중엽경의 불상들과 상통한다. 하지만 얇은 층단식 주름의 세련된 표현으로 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불상에서 돋보이는 특징은 사자좌(獅子座)라 할 수 있는 대좌이다. 대좌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는 둥근 원판형 윗부분을 약간 높여 정교한 연주문(連珠文)을 새겼다. 그 아래로 활짝 핀 단판 연꽃무늬를 두 겹으로 새긴 중엽연화문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연꽃무늬는 8세기 중엽의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나 경주 남산석불좌상과 비슷한 것이다. 8세기 중엽경의 석불대좌 상대의 특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중대는 7㎝ 높이의 얕은 것으로 둥근 원형 받침 형태이다. 두 줄의 띠를 새기고 있어서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찾아볼 수 없는 특징적인 예이다. 하대는 아랫부분에 복판연화문을 새겼고 이 위로 사자 11마리를 환조(丸彫: 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내는 일)로 새기고 있다. 연꽃무늬는 아래로 향한 복판 연꽃무늬로 세련되고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위에는 정면에 중심을 파낸 받침이 있다. 향로 같은 공양구를 끼우던 받침으로 생각된다.
이 좌우는 11마리의 사자를 환조로 조각해 놓았는데 하대와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사자는 대좌 안으로 향하여 올라가는 자세를 나타낸 것이며,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밖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소 마멸되어 원래의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은 정확하게 볼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실적인 형태와 정교한 터치는 살아 있다. 이처럼 다수의 사자를 새긴 본격적인 사자좌는 우리 나라 불상에는 한 예도 없어서 이 대좌만으로도 이 불상의 가치는 높다.
이러한 사자좌의 예는 1979년 국보로 지정된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그림이기 때문에 머리를 세워 밖으로 향하면서 상대를 떠받치는 형태이다. 사자 모양이 다소 다르지만 이 불상대좌와 같은 구상에서 조형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소형 금동대좌 부분으로 생각되는 것에 환조된 7구의 사자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조형하기 어려운 석조각으로 11마리를 정교하게 새긴 것은 이 불상대좌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구상력과 정교하게 뛰어난 기법, 세련되고 우아한 양식 등에서 이 사자좌는 당대의 최고 가는 일품으로 생각된다.
우아하고 세련된 불상의 특징과 정교하고 독창적인 사자좌의 표현으로 8세기 후반기의 가장 우수한 석불상의 예가 된다. 뿐만 아니라 유일한 사자좌를 가진 사실적인 석불좌상으로 크게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