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가(仲嘉)·중소(仲素). 할아버지는 우의정 박은(朴訔)이고, 아버지는 부윤(府尹) 박훤(朴萱)이며, 어머니는 구강(具綱)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내외직을 거쳐 1490년(성종 21) 대사헌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동지중추부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3년에는 형조판서로 정조사(正朝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빙자하여 사퇴하였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02년(연산군 8) 삼도입거도순찰사(三道入居都巡察使)가 되었고 1504년 우의정, 2년 뒤에 좌의정이 되었다. 당시는 연산군의 폭정이 절정에 달하여 벼슬을 버리고자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석달 동안 등청하지 않다가 추국(推鞫: 의금부에서 임금의 명에 의하여 심문을 함)을 받은 뒤 면직되었다. 중종반정 후 다시 등용되어 1507년(중종 2)에는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공경(恭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