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혼중(渾仲). 박임종(朴林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정랑 박조년(朴兆年)이고, 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사부(洪士俯)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성균시에 합격하여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고, 이어서 태인현감(泰仁縣監)·호조정랑을 거쳐 봉산군수(鳳山郡守)가 되었다.
군수로서의 임무에 충실하여 당시 도적떼인 임꺽정(林巨正)의 무리까지도 꺼릴 정도로 군민을 잘 보살폈다. 대구·이천·수원 등지의 부사(府使)와 광주(廣州)·양주(楊州)의 목사를 거쳐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사재감정(司宰監正)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대구부사로 있을 때는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의 후손 박충후(朴忠後)가 대구에서 천역(賤役)을 하는 것을 노비문적에서 빼내어 천역을 면하게 하였다. 아우 박응순(朴應順)의 딸이 선조의 비(妃)가 되자 그녀에게 선조가 덕으로써 정사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조에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가세가 몰락되었으나,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켰고 덕을 택하고 은혜 갚기에 전념하였다. 관직에 나아가 탐욕하지 않았고 명예를 얻으려고 힘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