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안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해미현감, 동부승지,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계순(季順)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0년(선조 23)
사망 연도
1663년(현종 4)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해미현감|동부승지|판결사
관련 사건
인조반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해미현감, 동부승지,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계순(季順). 할아버지는 박호원(朴好元)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박정현(朴鼎賢)이며, 어머니는 김급(金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고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이끌고 이에 항소(抗疏)하였다.

1621년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을 제수받았으나, 이이첨(李爾瞻)의 농간으로 3년 동안이나 부임하지 못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해미현감으로 발탁되어 많은 공적을 남겼다.

1627년에는 지평(持平)이 되었고 4년 뒤에는 장령(掌令)이 되었으며, 1632년에 인조의 사친(私親) 추숭(追崇)을 논의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이조판서 이귀(李貴)의 상소로 목천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수찬(修撰)과 사헌부의 벼슬을 지내고, 1650년(효종 1) 다시 수찬이 되었다가 외직으로 나가 종성부사가 되었다.

2년 뒤에 서울로 돌아와 동부승지·판결사를 지내고 다시 외직으로 나가 충주목사가 되었다. 1659년(현종 1) 병조참의에 임명, 재직 중 죽었다. 효우(孝友)를 늘 강조하였고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며 사치를 싫어하였고 사서(史書) 읽기를 좋아하였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설봉집(雪峯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